아빠가 쓰고 딸이 보내는 <나만의 한국사 편지> 1년 제작기

월 구독료 3천 원, ‘한국의 멋’을 담은 편지의 나비효과

아빠가 쓰고 딸이 보내는 <나만의 한국사 편지> 1년 제작기

월 구독료 3천 원, ‘한국의 멋’을 담은 편지의 나비효과

‘한국의 멋이 이렇게 힙한데 왜 이걸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콘텐츠는 없을까?’

5년 차 영화 기자로 일하다 퇴사한 후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마침 옆에는 경력 19년 차 역사학자가 한 명 있었다. 같이 하자고 하면 무조건 오케이 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평소에 한국사에 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회사를 그만둔 나는 아직 세상에 없는, 하지만 있으면 멋있을 것 같은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싶던 참이었다. 그렇게 <나만의 한국사 편지>가 시작됐다. 아빠는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하는 필자가, 나는 부캐 집배원 부(=편집자)가 되었다.

평소 이렇게 외부에 뉴스레터를 소개하는 글은 내가 주로 써왔다. 그래도 1년의 뉴스레터 제작기인데, 이번에는 필자님의 소감도 담는 게 좋을 것 같아 원고를 요청했다. 뉴스레터 원고가 아닌 글은 처음 받아보는지라 읽으면서 뭉클한 지점이 많았다. 그래서 이 지면에서만큼은 편집을 하지 않고 역사학자, 글 쓰는 사람이면서 졸지에 큰 딸을 편집장으로 두게 된 조경철의 글을 그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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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에 ‘한국의 멋’을 담다.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대중과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특히 잘못 알려졌거나 잘 알려지지 않는 내용을 쉽고 친근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마침 글을 쓰거나 글을 다듬는 일을 하고 있는 딸이 아빠의 책을 읽고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덧붙여 책에 있는 내용을 대중과 독자의 입장에서 다른 방식으로 써보고 미처 책에 쓰지 못한 주제를 뉴스레터란 형식으로 써 볼 것을 제안했다. 나는 큰(?)딸이 아빠와 무슨 일을 같이하자고 해서 매우 기뻤다. 딸이 하자고 하니 무엇이든 하고 싶었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 쓰는 사람은 글 읽어주는 사람이 제일 맘에 드는 법인데 읽어주는 건 물론 읽기 좋게 다듬기까지 해준다고 하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딸의 제안인데.

그런데 한 가지 꺼림직한 면이 하나 있었다. 지금까지 강연을 하거나 글을 쓸 때 강연비가 얼마거나 원고료가 얼마인지 먼저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주는 대로 받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미덕으로 생각했다. 뉴스레터를 유료로 보낸다고 생각하니 왠지 글을 갖고 장사하는 것 같아 망설여졌다. 하지만 글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아무리 작은 대가라도 돈을 받고 글을 쓴다는 것이 글에 대한 책임감을 높이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여전히 쑥스럽기는 하다.

글쓰는 아빠, 편집하는 딸

무엇보다 뉴스레터를 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계기는 ‘편지’라는 단어였다. 예전에 ‘연애편지’를 일주일에 몇 통씩 보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세월이 지나 편지를 쓸 기회가 많이 줄었다. 장문의 편지는 거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연애편지’로 태어난 딸이 같이 편지를 써보자고 하니 기분이 묘했다. 나는 딸에게 편지를 쓴다는 생각으로 <나만의 한국사 편지>를 써나갔다.

작년 1년 한 달에 두 번씩 꾸준히 뉴스레터를 썼다. 한 번도 펑크를 내지 않은 건 딸이 편집장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으레 마감일을 넘기기가 일수인데 뉴스레터는 마감일을 꼭 지켰다. 뉴스레터를 쓰지만 누가 돈을 내고 내 글을 읽을까 궁금해하기도 했다. 생각 같아선 독자가 한꺼번에 확 늘 것 같은 환상에 빠지기도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구독자가 생기고 또 따뜻한 구독 후기를 남겨줄 땐 글을 쓴 보람을 느낀다.

뉴스레터를 쓰면서 나한테도 많은 변화가 왔고 좋은 점도 생겼다. 무엇보다 딸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가족들도 읽어주니 너무 좋았다. 또 내가 생각하고 있던 한국사의 여러 주제나 한국미술에 관한 여러 주제를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은 2~3장의 분량으로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좋은 생각이나 관점을 이렇게 정리해 두면 나중에 내가 소망하는 고조선부터 대한민국에 이르는 우리의 전 역사를 책으로 엮는데 소중한 자산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뉴스레터 <나만의 한국사 편지>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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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1년만 해보기로 했던 뉴스레터, 시즌 2로 이어갑니다.

가족이나 지인과의 프로젝트는 쉽게 시작할 수 있지만 그만큼 그만두기도 쉽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독자에게 구독료를 받으면 달라진다. 다만 나는 몇몇 유료 뉴스레터를 구독해 봐서 이러한 시스템이 익숙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글을 사고파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50대 아빠가 걱정이 되긴 했다. 아마 한국사를 이야기하는 뉴스레터도 최초지만, 스티비를 통해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연장자 발행인이지 않을까 짐작한다. 그렇지만 이런 지점들이 <나만의 한국사 편지>를 특별하게 느껴지게 만들 것이라 생각했다.

솔직히 뉴스레터 구독 신청 페이지를 만들고 오픈하기 전엔 조금은 초조했다.

‘유료라서 아무도 신청 안 하면 어떡하지?’

‘한국사 뉴스레터가 지금까지 없었던 건 없을 만하니까 없던 게 아닐까?’

‘쥐도 새도 모르게 망할지도 모르니까 일단은 시즌 1로 1년만 해보자’

그렇게 구독자들을 받기 시작했다. 입금과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조건 시작해야 해. 한 달에 두 번 무조건 구독자 메일함으로 편지를 보내야 한다. 사명감이 생겼다. 시즌 1로 끝나는 기간을 설정한 이유는 솔직히 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선택이었다.

2022년 2월, 시즌 2를 새롭게 시작하는 <나만의 한국사 편지>

그렇게 2021년 2월부터 한 달에 두 번의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한 번은 교과서처럼 나라별로 업적이나 특징들을 뚝뚝 잘라 설명하는 것이 아닌, 한 나라가 망하고 생기던 멸망과 건국의 순간을 짚어보는 내용을, 다른 한 번은 역사학자 조경철만의 시선이 담긴 한국미술(유물)들을 하나씩 선정해 깊이 알아보는 이야기를 담아 보냈다. 다행히 우리의 이야기를 재밌게 읽어주는 독자들이 생겼고, 2월에 바로 시즌 2를 이어 가기로 했다. 시즌 2는 ‘한국 신화와 전설’과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박물관 유물’ 이야기를 교차 연재하기로 했다. 1년간 뉴스레터를 연재하며 사람들이 어떤 주제를 좋아하는지 알아보고 기획한 주제인 만큼 시즌 2도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

아빠와 딸 그리고 구독자가 만드는 ‘월 구독료 3천 원’의 마법

‘월 구독료 3천 원’의 마법은 독자들에게도 꽤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보통 무료 뉴스레터의 오픈율이 20% 정도라고 알려져 있는데, <나만의 한국사 편지>의 오픈율은 그보다 3배 정도 높다. 정성 들인 글을 보내고, 정성 들여 읽어주는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 같다. 뉴스레터를 다 읽어야만 보낼 수 있는 질문과 감상이 답장으로 돌아올 때 보람을 느낀다. 오프라인 전시와 실물 편지 콜라보를 했을 때 직접 찾아가 방명록을 남겨 주신 분, 친구에게 추천한다며 친구 것도 구독 신청해 주신 분, 뉴스레터를 보고 박물관, 미술관을 다녀와서 좋았다고 이야기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계속 연재할 힘을 얻는다.

뉴스레터를 발행하며 어른이 될수록 점점 어색해졌던 아빠와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아빠와 딸이 각자가 택한 서로의 직업을 존중해 무언가를 만들어갔던 귀한 시간이었다. 뭘 해도 만족스럽지 않았던 지난 코로나 1년, 가장 뿌듯했던 일은 바로 <나만의 한국사 편지>를 시작한 것이었다.

글. 조경철(역사학자), 조부용(콘텐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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