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라는 사건, 전시 도구로써의 뉴스레터
‘턱괴는여자들’의 전시 ⟪아마도, 여기⟫ 내외부에서 벌어진 것들
모든 사건에는 시점이 존재한다.
서사 밖에서 관찰하는 외부인과 한가운데 있는 내부인, 그리고 그사이를 관망하는 경계인이다.
«아마도, 여기 (Possibly, Here)»라는 전시가 있다. '전시' 형식을 띠지만, 이것은 '사건'으로 불릴 수 있다. 이 글은 외부인으로서 «아마도, 여기» 사건 발생 원인을 밝히고, 내부인으로 사건의 의미를 짚어본다. 마지막에는 경계에 서서 이번 사건이 주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것이다.
외부인으로서
턱괴는여자들은 2021년, 파리에서 돌아온 정수경과 송근영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들은 밝은 사각지대 리서치를 실천하며 '여자 야구'에 관해 탐색하다가 '외로움'을 발견한다. 여자 야구 선수들을 통해 아무리 강인한 개인이라도, 제도의 부재로 생성되는 외로움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윽고 외로움은 그들의 다음 주제가 되었다. 예술가, 인권 운동가, 다큐멘터리 감독, 건축가와 함께 외로움을 파헤치다 ‘적대적 건축¹’을 떠올리고, 그때쯤 '캐롤 슈디악(Carol Chediak)'을 만난다. 사건의 발단이었다.
캐롤은 브라질의 양로 시설에서 노인들의 초상을 찍었다. 그러나, 노년의 주름을 클로즈업하기보다는 방의 구조가 훤히 드러나는 거리감을 잃지 않았다. 턱괴는여자들은 영민하게, 이 사진 시리즈가 지난 리서치를 포옹할 작품임을 알아차렸다. "전시로 이 작품을 보여줍시다!" 사건의 발생이었다.
¹방어적 설계, 배타적 설계라고도 불리며 의도적으로 행동을 유발하거나 제한하는 설계 전략으로 양로 시설도 이에 포함될 수 있다.
모든 사건에는 원인과 동기가 있다. «아마도, 여기» 전시가 사건이 된 것은, 턱괴는여자들이 '외로움에 사회 구조적 책임은 없을까?' 질문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부인으로서
턱괴는여자들은 동료를 끌어들였다. 오랜 시간 외부자로서 턱괴는여자들의 활동을 지켜본 김진혁이었다. 둘에서 셋이 된 그들은 사건(전시)을 진행시키기 위해 <블라인드 에세이 (Blind Essay)>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국내 5명의 에세이스트들을 섭외하여 캐롤의 사진 시리즈를 먼저 보여주고, 개성 있는 각각의 글을 '사진 없이' 뉴스레터로 발행하는 사전 프로젝트(Pre-Project)였다.
본 사건에 앞서 사전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1. '캐롤 슈디악'은 뉴욕과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하지만, 아직 아시아 지역에선 낯설고 국내에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예술가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소개할 시간이 길게 필요했다. 오프라인 전시를 1주일 앞두고, 홍보 포스터를 게시하는 것으로는 충분할 수 없었다.
2. 작품을 좋아해 줄 집단이 '읽는 인류' 안에 있다고 믿었다. 턱괴는여자들이 선택한 작품은 미술 시장 트렌드에 기인하지 않는다. 시급한 시의성을 따지는 덕분에 트렌드 앞에 놓여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알아봐 줄 대상은 세상의 단면에 관심을 주는 독자였다.
3.예비 관람객을 찾는다는 점에서 이것은 분명한 마케팅이었다. 보통의 마케팅이 버스 정류장에 포스터를 붙인다거나 선물 이벤트를 여는 방식으로 작품 외부에서 독립적으로 진행된다면, 이 프로젝트는 작품 내부에서 작동하는 유기적인 마케팅이다.
독자이자 예비 관람객은 사진 없이 발행된 블라인드 에세이를 읽고, 전시에 앞서 적극적으로 사진을 상상하다가 마침내 전시장까지 방문할 수 있다.
4.전통적인 큐레토리얼 텍스트 탈피를 지향했다. 동시대 미술 안에서, 사진 미학에서 오랜 시간 활용된 단어와 서술 방식 대신, 에세이의 형식을 빌려 다채롭고 일상적인 문장으로 표현되길 꿈꿨다.
경계인으로서 - 전시 도구로써의 뉴스레터
지금까지 외부인과 내부인의 시점으로 '전시라는 사건'의 원인과 의미를 짚어봤다. 이제 한 걸음 물러나 경계인이 될 차례다.
«아마도, 여기» 전시의 사전 프로젝트 <블라인드 에세이>는 좋은 뉴스레터를 쉽게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스티비'를 통해 발행했다. 디지털 소통 방식에 선택지가 매우 다양해졌음에도,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받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23년 스티비 리포트에 따르면, 스티비를 통해 발행된 이메일 레터는 2019년 2.9억 건에서 2022년 16.2억 건으로, 3년간 5배 넘게 늘어났다.
턱괴는여자들이 상정한 독자는 숏폼을 통해 빠르게 습득되는 정보를 지향하기보다는 섬유질을 씹듯 꼭꼭 씹어 소화시킬 수 있는 양질의 글을 원하는 이들이었다. 디지털 세상 안에서 이런 독자를 만나기 가장 적절한 방식은 이메일 주소로 보내는 뉴스레터였다. 자발적으로 구독 신청을 하고, 직접 제목을 클릭하며, 10분 이상의 시간을 들여 본문을 읽기 때문이다.
스티비에서는 위와 같은 동선을 매우 쉽게 이을 수 있다. 스티비 내 UX를 따라 구독자 신청 페이지를 간단하게 만들 수 있고, 가독성 높은 레이아웃과 다양한 템플릿을 제안한다. 덕분에 턱괴는여자들과 잠재적 관람객들은 빠르게 연결될 수 있었다.
한편으로 '휘발성'을 염려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스티비 아카이빙 페이지를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10월 11일부터 11월 23일까지 발행된 블라인드 에세이는 물론, 11월 30일 성수동에서 오프라인 전시를 오픈한 이후의 서사까지 한곳에 모아 둔 것이다. 이로써 중간에 «아마도, 여기»를 찾은 관람객에게도 효율적인 도슨트가 되어준다.
그렇게 우리는 스티비를 통해 뉴스레터가 전시 도구로 작동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글. 김진혁(턱괴는여자들)
턱괴는여자들은 2021년 10월, 건축사 연구자와 콘텐츠 연구자가 모인 리서치 콜렉티브로 시작했다. 현재는 출판과 전시 기획사로 확장해 책과 전시를 만들고 있다. 이미지와 글이라는 도구, 리서치라는 무기를 들고 밝은 사각지대를 탐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