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칠 인터뷰, 일과 우정 그리고 풀칠하는 삶에 대하여

먹고사는 게 다여서야 되겠습니까?

풀칠 인터뷰, 일과 우정 그리고 풀칠하는 삶에 대하여

Interviewee 야망백수, 아매오, 파주


일과 삶 사이, 매일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하는 뉴스레터 <풀칠>. 사회초년생들이 직장생활 푸념의 규모를 키우자며 시작한 뉴스레터는, 어느덧 5년 넘게 발행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시즌제 운영부터 글쓰기 모임, 외부 필진 참여까지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거치며 다루는 일의 형태도 조금씩 넓혀왔는데요.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뉴스레터를 시작하는 경우는 많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하는 팀은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 스티비 인터뷰에서 뉴스레터 <풀칠>이 꾸준히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와 마음에 대해 물었습니다.

이메일로 개인적인 우정을 나누는
뉴스레터가 되고 싶어요

오랜만에 진행하는 인터뷰라 오랫동안 읽고 있는 뉴스레터를 만나고 싶었어요. <풀칠>이 바로 떠오르더라고요. 각자 소개 부탁드려요.

아매오: 네, 저는 아매오이고 원래는 콘텐츠를 만들거나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을 했어요. 지금은 장사하는 자영업자가 되기 위한 준비 중입니다.

야망백수: 저는 야망백수지만, 이제 백수도 아니고 야망도 이번 시즌부터 조금씩 잃었습니다. 야백이라고 부르고 본업은 마케터예요. 풀칠 팀에서는 ‘풀칠이 뭐가 되면 좋을까?’를 많이 고민합니다.

파주: 저도 그만큼 고민하긴 하는데…(웃음) 지금은 광고 대행사 에디터고요, 처음 <풀칠>을 시작할 때는 소속사 A&R로 가수 뉴스레터 발행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어요.

뉴스레터 <풀칠>을 만드는 아매오, 야망백수, 파주(왼쪽부터)

자연스럽게 <풀칠>을 시작할 때와 지금으로 소개를 해주셨네요. 뉴스레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파주: 오래전이라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나요. 그때는 다들 주니어였는데요, 각자 다른 일을 해도 일로 겪는 어려움은 비슷하더라고요. 당시 회사에서 뉴스레터를 담당하고 있던 터라 이거 그냥 흘러 보내기는 아깝다, 스티비로 한 번 발행해 보자라고 말하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아매오: 대학생 때 독립잡지를 만들며 알게 된 사이라 공통 관심사가 많았어요. <뉴닉>이랑 <일간 이슬아>가 뜨면서 뉴스레터라는 툴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시기라 '우리도 요즘 핫한 거에 한 번 올라타 볼까?'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때와 비교해 요즘 <풀칠>은 어떻게 변했나요?

야망백수: 원래는 '직딩 애환 에세이레터'로 직장 에세이를 써보자는 취지였거든요. 그렇게 1년 반이 지나고 풀칠 71호부터는 매주 키워드를 정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어요. 좀 더 잡지처럼, 좀 더 매체처럼 느껴지기를 바랐거든요.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거듭하며 계속되고 있는 뉴스레터 <풀칠>

요즘은 예전보다 더 큰 가치를 논하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풀칠'은 '밥벌이 미학 연구회'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팀으로 정의하고, 스티비를 통해서 보내는 뉴스레터 <풀칠>은 이메일이라는 매체에 좀 더 적합하도록 편지에 최적화되게 살짝 개편했어요.

이번에는 어떻게 개편했나요?

야망백수: 예전에는 '풀칠러 여러분' 이렇게 전체를 부르는 표현을 많이 했다면, 요즘은 제가 그런 표현들은 이메일에 들어가서 몰래 고치는데요.

아매오, 파주: …네?

야망백수: 이메일이라는 공간 안에서 개인적인 우정을 나누고 싶어요. 직접 주고받는 편지로 느껴지도록, 새로운 시즌을 실험하고 있는 중이에요.

아매오: 그러고 보니 에세이도 최근에는 좀 더 말을 건네는 듯한 어투로 통일해서 쓰고 있어요. '~했다.'라는 어투가 아니라 '~했습니다.'라고 대화 형식으로 문장을 마무리 해요. 다들 누군가에게 전하는 편지라고 생각하고 쓰고 있는 거죠.

마감은 스포츠다!
이제 코멘트 달 정도는 된 듯?

기존에는 ‘밥벌이의 슬픔과 기쁨’, ‘밥벌이 그 이상의 풀칠을 위하여’로 소개했는데, 요즘은 ‘밥벌이 미학 연구회’라고 하시더라고요.

야망백수: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뭐랄까 '중도'를 지키고 싶어요. 너무 자기개발적이지도 그렇다고 일하기 싫다는 태도도 아니게요. '밥벌이'라고 하는 게 '먹고살려고 하는 거야, 돈 벌려고 하는 거야'로 약간 자조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해학적인 의미도 담겨있거든요. 팀 이름이자 뉴스레터 이름인 '풀칠'도 같은 맥락이에요. '입에 풀칠한다.'라는 말에서 왔고 생계를 이어가는 행위라는 점에서 '밥벌이'에 닿아 있죠.

뉴스레터의 톤 앤 매너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잘 유지하는 것 같아요.

아매오: 톤 앤 매너는 야망백수가 주로 잡고 있어요. <풀칠> 이름도 야망백수가 들고 왔고요. 처음 뉴스레터 이름을 뭘로 할까 했을 때, 갑자기 '내가 생각해 봤소!'라면서…

야망백수: 내가 생각해 봤소! <풀칠>은 어떻습니까?

그렇게 탄생했군요. 제작 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까요?

파주: <풀칠>이 가지는 정체성, 어떤 방향성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기조가 확실히 있어요. 한 명이 에세이를 담당하지만 모두가 참여하는 코멘트로 마무리 되니 조금 튀는 이야기를 쓰더라도 코멘트가 막아줄 거라는 신뢰도 있어요. 나름 팀플레이인 거죠.

야망백수: 저희끼리 수요일마다 '마감은 스포츠다.'라고 말하거든요. 수요일 6시에 퇴근하고 그대로 회사 의자에 앉아서 그때부터 코멘트를 얹기 시작하는… 진짜 스포츠.

아매오: 물론 정해진 스케줄은 있어요. 초반부터 있었고 지금도 있지만, 쓰다 보면 마감일에 닥쳐서 완성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요즘은 마감일 하루, 이틀 전까지는 초고가 나와요. 초고를 전달하면서 '이제 코멘트 달 정도는 될 듯!'하면서 넘겨요.

따로 분명한 역할이 나눠져 있는 건 아니군요.

아매오: 네, 아무래도 그날 에세이를 담당이 좀 더 편집하긴 하지만요. 지금은 어느 정도 템플릿화를 해놓아서 각자 넣어야 하는 내용들만 담당해도 거의 완성돼요.

평일 저녁 퇴근 후, 스티비 인터뷰를 위해 모인 아매오, 야망백수, 파주 (왼쪽부터)

5년 넘게 꾸준히 보낸다는 게 대단해요. 좋아하더라도 계속하는 건 쉽지 않잖아요.

파주: 이제는 안 하면 좀 허전해요. 일하다 보면 쌓이는, 약간의 창작욕이라고 할까요? 분노나 답답함 같은 감정들은 글로 해소되기도 하잖아요. 다른 사람의 코멘트나 피드백으로 해결할 힌트를 얻기도 하고요.

아매오: 제게는 <풀칠>을 함께 만드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거든요. 편하게 에세이 작성 순서를 바꿔달라고 요청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태업하거나 잠수 탈 수는 없는 긴장감 있는 관계예요.

좋은 긴장인데요?

아매오: 그 덕분에 오래 할 수 있었어요. 또 어느 순간부터 뉴스레터를 통해서만 저를 알게 되는 관계도 생기더라고요. 나를 '아매오'로만 아는 사람들. 그렇게 <풀칠> 안과 밖에서 만들어지는 관계들이 뉴스레터를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준 것 같아요.

야망백수: 저도 팀이라서 지속할 수 있었어요. 스스로 콘텐츠의 형태를 갖추지 않은 메모들을 많이 하는데, <풀칠>이라는 콘텐츠를 담을 그릇이 있으니 보다 형태를 갖춰서 담게 되더라고요. 그런 결과물이 쌓이는 게 좋고 재밌어서 계속할 수 있었어요.

메일함 너머의 구독자를 직접 만나는 순간
우리 뉴스레터를 읽어주는 사람이 진짜 있구나!

짤방토크, 외부필진 에세이, 오픈채팅 등 <풀칠>스러운 실험들이 많았죠. 기억에 남는 시도는 무엇인가요?

야망백수: 연말쯤에 갑자기 사람들을 초대하는 진짜 '팝업'을 했어요. 급하게 기획해 후다닥 열었죠. 어떤 목표나 달성해야 하는 수치 없는 팝업을 하고 싶었거든요. '우리는 열 테니 와라, 안 와도 상관없다.' 그런 반자본주의적인 팝업이요.

아매오: 하루 전 날 인스타그램에 공지하고 다음날 바로 해버렸어요. '아무도 안 와도 상처받지 않음'이라고 적고.

‘아무도 안 와도 상처받지 않음’이라니 풀칠스러워요.

파주: 마침 제가 대전에 다녀온 날이라 튀김 소보로를 웰컴 빵처럼 드렸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저희를 알게 되셨는지도 물어보고요. 실체를 확인했다고 해야 되나요? '와! 우리 뉴스레터를 읽어주는 사람이 진짜 있구나!'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꾸준히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매오: <풀칠>이 다루는 일의 범위를 더 넓히고 싶어요. 우리만 쓰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참여하도록. 그럼 담게 되는 이야기도 풍성해지니까요. 뉴스레터를 만드는 부담도 줄고 또 다른 시도도 해볼 수 있고요.

야망백수: 일이 '먹고살려고 하는 거야'로만 끝나지 않고 커리어나 생산성과는 상관없는 창작으로도 연결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글쓰기 모임이나 기고 에세이 등으로 구독자 분들과 함께 <풀칠>을 꾸려나가 보고 싶어요.

<풀칠>이 다루는 일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시도한 글쓰기 모임

일하다 보면 바빠서 흘러 보내게 되는 감정들을 남길 계기를 마련해 주시는 거네요. 뉴스레터 하단에 <풀칠>하는 데 쓰겠다고 계좌번호도 적혀있죠?

파주: 뉴스레터도 안 굶어야 쓸 수 있는 거라…

야망백수: 처음 계좌번호를 넣었을 때는 잠깐 직업이 없었던 백수 시절이었는데요. 사실 그때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넣었어요. 계좌번호가 제 거라서 저만 추이를 아는데…

아매오: 스티비 운영 비용 정도는 받고 있어요. 그 비용을 버는 게 처음 목표였거든요. 다행히 보내주시는 마음들이 있어서 <풀칠>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대학생 때 독립잡지를 만들기 위해 모여, 지금은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는 친구들

실제로 만나 본 <풀칠> 구독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아매오: 대부분 저희 또래였어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 실제로 만나 이야기해 보면 느껴지는 게 있잖아요? 일에 대해 지향하는 바와 태도를 직접 마주하는 게 재밌었어요.

야망백수: 함께 뉴스레터를 만들고 있지만, 저희끼리도 일을 대하는 태도는 조금씩 다르거든요. 성장에 좀 더 집중과 일하기 싫어로 스펙트럼이 있어요. 구독자 분들을 만나니 그 스펙트럼이 더 넓어지는 느낌이에요. 재밌었던 점은 '이건 완전 아매오를 통한 유입이다.', '이 분은 파주 글을 읽고 오셨다.'를 바로 알겠더라고요.

<풀칠>이 지향하는 독자와의 관계는 어떤 느낌인가요?

아매오: 최근 '밥벌이 미학 연구회'라는 워딩을 붙이면서 생각해 봤는데, 일종의 공동체를 기대해요. 예를 들어 과학자라고 하면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논하잖아요. 꼭 만나지 않더라도 글로벌하게 교류할 수 있는데, <풀칠>도 읽는 이들끼리 어떤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동안 우리끼리 우리 이야기를 써서 보내기만 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풀칠>을 읽는 사람들이 모여 읽고 쓰고 교류하는 관계를 만들고 싶어요.

야망백수: 일을 매개로 자기의 삶을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는 사람들, 그리고 이걸 공유하는 공간으로써 <풀칠>이랄까요?

새로운 슬로건 ‘일하는 일상의 의미를 탐구하고, 우정의 기회를 늘립니다.’에 그 의미가 담겨있네요.

파주: 세상에 밥벌이는 되게 다양하잖아요. 저희는 계속 여러 사람들이 하는 일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거든요. 일상에서 그냥 묻는 건 어려우니까 <풀칠>을 계기로 좀 다양화된 이야기를 모으고 싶어요.

아매오: 예전에 에세이 보내주신 분 중에 싱가포르에서 요리사를 하시는 분이 계셨거든요. 제가 그 글을 편집했었는데, 마지막 문장이 '밥 먹을 시간이다.'하고 끝나요.

요리사의 마지막 문장. 멋지네요.

아매오: 그분이 썼기 때문에 힘이 생긴 문장이니까 '아, 어떤 배경을 갖고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문장을 써도 다른 힘이 생기는구나.'를 느꼈어요. 글의 스킬과 별개로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이 무엇을 쓰느냐가 중요한데, 구독자 분들과 함께 만든다면 그 자체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기록
2020년 대 일하는 사람들의 현실

이번 출간하신 책 『풀칠이라는 농담』도 소개해 주세요.

야망백수: <풀칠>에 풀칠러 스케치라는 코너가 있는데요, 거기 담긴 스케치들 중 비슷한 주제끼리 엮어 낸 단행본이에요. '풀칠'이라는 단어에 자조적인 농담이 담겨있듯, 우리가 먹고사는 일을 한 발 떨어져 살펴보면 조금 이상하고 또 조금 웃기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세상을 농담으로 해석한 스케치들을 모아 이번에 책으로 발행했어요.

<풀칠>에 실은 그림을 엮은 단행본 『풀칠이라는 농담』

매주 살아낸 힘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네요. <풀칠>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야망백수: 아무래도 쓰는 사람이 여럿이라 목표를 하나로 정의하는 게 어려워요. 아매오는 커뮤니티에서 생기는 관계나 우정을 좋아하니까 그런 기회를 더 많이 만들고 싶어 하고, 저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며 콘텐츠를 완성하는 결과물을 보면서 계속해 나가는 거고요. <풀칠>을 사업화하겠다거나 돈을 많이 벌겠다까지는 아닌데…

파주: 저는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싶은데요?(웃음) 농담이고요. 아직까지는 저희끼리도 조금씩 달라서 구체적으로 이거다라고 말하기는 조금 어렵네요. 가볍게 본다면 풀칠러들이 일을 대할 때, '힘든 순간에도 털어낼 수 있는 <풀칠>이 있다.'라는 안정감을 주고 싶어요.

엮어 내신 책처럼 뚜렷한 목표가 없더라도 하루하루가 쌓여 무언가 만들어 지기도 하죠.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치며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야망백수: 세상에 여러가지 직업, 밥벌이가 있는데 그들이 갖는 의미를 포착해 나가고 싶어요. 나중에 <풀칠>에 쌓인 일에 대한 기록이 2020년 대에 일하는 사람의 현실을 보여주는 무언가가 된다면 좋겠고요. 그러기 위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담아야겠죠.

그런데 지금처럼 재밌게 하다보면 무언가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궁극적으로는 세상에 '먹고사는 게 다여서야 되겠습니까?'라는 메시지를 계속 전하고 싶어요. 지금으로는 그 방법 중 하나가 뉴스레터이고요.

세상에 '먹고사는 게 다여서야 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은 풀칠

풀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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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포토그래퍼 전예슬
인터뷰, 편집 | 스티비 이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