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하는 여자들’을 만든 뉴스레터

뉴스레터로 케이팝 토크 기획하기

‘케이팝 하는 여자들’을 만든 뉴스레터

‘케이팝 하는 여자들’ 토크는 '케이팝 하는 여자들' 모임에서 출발한 기획으로, 케이팝 소비자의 대부분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케이팝 산업과 문화 내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적극 반영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토대로 여성 팬의 적극적인 발화의 자리를 만들어보겠다는 일념 하에 기획한 행사이다.

'케이팝 하는 여자들' 행사 현장, ©혜영(언니와 호랑이)

‘케이팝 하는 여자들’이라는 최초 기획을 바탕으로 행사를 구체화하기까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리서치 과정은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스티비’를 통해 발행되고 있는 케이팝 뉴스레터에 특히 주목했다. <콘텐츠 로그>,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 <stew!>와 같은 뉴스레터들은 레거시 미디어가 구체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웠던 ‘팬’의 목소리를 당사자로서, 또 인터뷰어로서 담고 있는 중요한 문화콘텐츠였고, 케이팝과 관련한 행사를 기획하는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목소리였다.

기획의 방향성을 잡다

대중문화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

올해 4월 25일, ‘민희진’이라는 이름 석 자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이날 진행된 민희진의 기자회견은 하이브 경영권 탈취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자리였지만, 그가 케이팝 씬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해 온 제작자로서의 경험과 관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특히 이를 전달하는 민희진의 직설적인 언행은 연일 화제가 되었고, 화제성만큼이나 그의 ‘말’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들이 연일 쏟아져 나왔다.

대중문화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는 기자회견으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난 시점에 민희진의 ‘말’을 분석한 인터넷 밈 연구가, 기자, 대중음악평론가, 사회학 연구자들의 글을 소개하고 자신의 관점을 짧게 덧붙이는 “민희진의 말말말.zip”을 발행하였다. 해당 호의 흥미로운 지점은 각자가 놓인 위치에 따라 민희진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게 서술된다는 점이었다. 이른바 ‘민 대표 신드롬’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 앞세워진 키워드는 전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고, 이는 우리가 케이팝을 바라볼 때 투시되는 복잡다단한 관점과 닮아 있었다.

우리는〈콘텐츠 로그〉가 민희진의 ‘말’을 둘러싼 다수의 논의들을 소개했듯 ‘케이팝 하는 여자들’ 토크의 키워드를 여러 개로 쪼개어 구체화하기로 결정하였다. 케이팝이 하나의 고정된 줄기로만 이야기되는 것은 기존 케이팝 산업의 문법과 다를 바 없고, 이는 우리 행사의 목표와 거리가 멀다는 판단에서였다. 우리는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케이팝을 둘러싼 키워드를 총 여섯 개(노동, 퀴어, 스트레스, 사랑, 페미니즘, 지속가능한 덕질)로 분류하였고, 각각의 키워드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연사 아홉 명을 섭외하였다. 

행사 목표를 세팅하다

2. “Why They Hate Us - 걸그룹 멤버의 열애설을 대하는 자세”

케이팝 뉴스레터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

케이팝 뉴스레터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은 연애를 인정한 한 걸그룹 멤버가 자필사과문을 작성해야 했던 경악스러운 사건에 대해, 발행인 일석의 단상을 에세이 형태로 담은 “Why They Hate Us"를 발행하였다. 일석은 열애설에 대해 “당사자가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나도 알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밝히며, 그가 연애를 한다는 사실보다 그에게 닥칠 “심각한 수준의 성희롱과 악의적인 비방” 등 폭력적인 상황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3. “엉뚱한 상상 - 어떻게 적폐까지 사랑하겠어, 케이팝을 사랑하는 거지”

그의 걱정은 케이팝 산업의 적폐를 홉뜬 눈으로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으로 이어진다. 페미니스트이자 노동자, 팬의 정체성을 두루 갖춘 그는 더 이상 케이팝을 “순정으로” 즐길 수 없다. 걸그룹에게 요구되는 애교, 성적 대상화, 무리한 다이어트 등의 척박한 노동환경은 페미니스트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동시에 “왜 나는 케이팝을 떠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이에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은 자신은 산업의 적폐가 아닌 ‘케이팝’을 사랑할 뿐이라는 답을 남기며,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왜”가 아닌 “어떻게”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계속해서 케이팝을 사랑할 작정이라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의 사랑을 발명하기로 했다는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의 결론은 ‘케이팝 하는 여자들’ 토크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지향점이었다. 우리는 케이팝을 엄격한 시선으로 재단하고 ‘망하게’ 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므로 우리 행사의 중심에 케이팝을 향한 사랑을 배치하고 싶었다. 이는 케이팝 산업이 지금껏 천착해온 자본주의적 시각을 비트는, ‘팬’만이 수행가능한 역할이자 ‘팬의 목소리를 영향력 있는 울림으로 전환시켜 보자’는 행사의 목적과의 결속 지점이었다.

Next Step을 고민하다

4. “덕질이 밥 먹여줘? - 아니? 일상을 풍성하게 만들어줘.”

맛있는 케이팝 뉴스레터 <stew!>

맛있는 케이팝 뉴스레터 〈stew!〉는 1n년 동안 케이팝을 좋아하면서 덕질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다채롭게 만들어주었는지 이야기한다. 최애 덕에 시작한 운동, 최애의 곡을 작업해보고 싶어 시작한 작사 공부, 최애의 감성을 좇고 싶어 장만한 필카까지… 최애는 내가 ‘소비해야 할 상품’이 아닌, 나의 삶을 조형하는데 도움을 주는 조력자이자 친구, 동료의 모습으로, 한 인간의 얼굴로 내 곁에 자리한다.

‘케이팝 하는 여자들’ 토크 역시 각 세션을 통해 우리가 아이돌을 상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볼 때 변화가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가 강조한 내용에 모두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에 압도된 듯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한 케이팝을 우리는 이제 어떠한 방식으로 바라보고 즐겨야 할까? 자본이 아닌 다른 형태로 그들과 사랑을 나누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에게는 여전히 너무 많은 질문이 남았다. ‘케이팝 하는 여자들'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다.


글| 구구(들불레터 발행인)
들불레터는 사회 이슈와 책을 엮어 소개하는 도서 큐레이션 레터로, 주로 여성작가의 책과 소식을 전한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사회현상을 바라보고, 이를 해석할 언어를 찾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눈 밝은 길잡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달 3회 발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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