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사람: 브로콜리너마저, 18년 차 K-인디인들의 소통법
그해 여름, 전국 투어 공연과 뉴스레터 마감을 병행해버렸다.
“그해 여름, 전국 투어 공연과 뉴스레터 마감을 병행해버렸다.”
Interviewee 브로콜리너마저
“음원 스트리밍과 뉴스레터, 두 가지 씬에 속해 있는 창작자”
반갑습니다. 각자 담당하고 있는 포지션과 함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류지: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에서 드럼을 맡고 있는 류지입니다.
잔디: 건반을 맡고 있는 잔디입니다.
덕원: 보컬과 베이스를 맡고 있는 윤덕원입니다.
뉴스레터 <브로콜리너마저의 K-인디 동서남북>(이하 동서남북) 소개도 부탁드려요.
덕원: 저희가 7월부터 <이른열대야 2022 — 전국! 인디자랑>(이하 이른열대야)이라는 이름의 전국 투어 공연을 치렀어요. 매년 여름마다 <이른열대야> 투어 공연을 해왔지만 올해는 조금 달랐죠. 공연을 위해 전국 곳곳에 갈 때마다 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른 인디 밴드들과 함께하는 무대를 기획했거든요. 함께 하는 팀들을 잘 소개하는 게 중요했는데, 그 방법으로 뉴스레터를 떠올리게 됐죠. 제가 2014년에 솔로 앨범을 냈을 때 비슷한 일을 해본 적도 있었고요.
8년 전에도 뉴스레터를 보내셨다고요?
덕원: 너무 옛날이죠? 당시, 홍대 인근에 있는 가게들에 엽서를 비치해서 QR코드를 통해 홈페이지로 유입되게 했어요. 사람들이 저에게 메일 주소를 알려주면 솔로 1집 <흐린 길>에 수록될 음원을 들어볼 수 있게 했고 그렇게 모인 구독자들에게 소통을 시도하기도 했는데요. 처음부터 끝까지 수동적인 작업이었고 지속하기 힘들다고 판단했죠. 요즘같이 뉴스레터 발행을 위한 툴이 활성화되기 전이었어요.
그렇게 한 번 시행착오를 겪어보신 적이 있어서 <동서남북>이 구독자들에게 매끄럽게 닿을 수 있었던 거네요.
덕원: 스티비 같은 툴이 상당히 편하게 다가오기는 했어요. 구독자 모집과 관리의 문제뿐 아니라 본문 디자인을 포함한 디테일에서도요. 다른 좋은 사례들을 접하는 것도 도움이 됐어요. 이를테면 제가 <일간 이슬아>의 초기 시즌을 구독했는데, 소위 틀거지가 문제는 아니고 내용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일간 이슬아>를 보면서 인식이 전환된 창작자들이 많았을 거예요.
<동서남북>은 한 시즌에 24,000원의 구독료를 받죠. 코어 팬이 아닌 대중을 만나고자 했다면 무료 발행을 고려해보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도 유료로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덕원: 저희는 콘텐츠를 파는 사람이에요. 요즘 대중들의 입맛은 꽤 까다롭고요. 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한다고 해서 상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목표의 허들이 낮아지지도 않아요. 그런 지점에서 창작자로서 쉽게 좌절도 하고요. 우리의 콘텐츠가 닿아야 할 사람들의 범위를 좁게 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막연하게 ‘대중’이라고 잡고 나면, 실제로 우리에게 무언가가 돌아온다는 느낌을 받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유료 뉴스레터 발행을 선택했어요.
시장에서 콘텐츠를 파는 사람들이 노출 범위에 대해 하는 고민이 담겨 있네요. 소비자가 아닌 판매자 쪽의 고민에 대해 조금 더 풀어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덕원: 스스로가 가진 콘텐츠를 파는 입장에 오래 서 왔는데, 늘 유료보다 무료 쪽이 더 어렵게 느껴져요. ‘무언가를 무료로 만들면서 성장하는 창작자 되기’라는 과제가 생각보다 힘들거든요. 하지만 2022년의 저희는 뉴스레터를 보내면서 성장의 기회를 만들고 싶었고, 이런 경험이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랐어요. 그러려면 유료 뉴스레터라는 방식이 더 알맞았죠.
음악 활동을 오래 해왔다는 건 그동안 여러 씬의 변천사를 겪어 오셨다는 뜻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뉴스레터의 구독료 책정에 대한 결정을 더 단호하게 하실 수 있었겠어요.
덕원: 맞아요. 저희는 CD 샵과 레코드 샵 시대의 끄트머리에서 음악을 시작했는데 음원 스트리밍 시대에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죠. 그간의 변화를 몸으로 느껴요. 처음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마주했을 때, 새로운 서비스의 미래를 짐작하다가 압도당해버리는 뮤지션들을 보곤 했어요. 지금 국내 뉴스레터 씬도 비슷한 느낌이에요.
음원 스트리밍과 뉴스레터, 두 가지 씬을 모두 경험하고 있는 창작자로서 정확히 무엇이 비슷하게 느껴지시나요?
덕원: 새로운 씬이 생기고 거기에 진입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질 때 맛보게 되는 어려움이 있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여기서 날 어떻게 어필해?’라는 고민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죠. 뉴스레터 크리에이터로서의 우리는 모두에게 어필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뉴스레터 씬을 흥미롭게 살펴보는 건, 제가 매체 쪽을 전공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원래는 밴드 하기 전에 게임 회사에 들어갈 뻔했는데요. 왜 들어가지 않았던 걸까요…
잔디: 그러니까요. 저는 간호사로 근무했었는데요. 왜 병원을 그만두었던 걸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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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륜으로 밀고 나가는, 세 사람의 세 가지 코너”
<동서남북>의 첫 번째 코너 ‘K-인디의 길’은 ‘K-인디 협회’의 김류지 이사장님의 짧은 글이 담긴 코너입니다. 이 코너에는 어떤 포부가 담겨 있나요?
류지: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게 다였어요. 이걸 보면서 누구라도 재밌어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컸어요. 그리고,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더라고요. 주 2회 공연하고, 주 2회 뉴스레터를 마감하다 보니…
각자 담당하는 코너가 독립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팀의 색깔도 잘 드러나요. 오랫동안 같이 활동하시면서 생긴 연륜이라는 게, 뉴스레터 작업에도 도움이 됐을까요?
잔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사장님?
류지: 제 글에 대해서는 매번 덕원 오빠가 피드백을 주는데요. 한 번은 너무 분량이 적다는 거예요. “트위터 멘션 하나만큼만 글을 쓰면 어떻게 해?” 하고요. “아니, 140자보다는 많이 썼는데?” 라고 반문하고 싶었죠. 근데 거기서 제가 글을 고치는 대신, 그렇게 피드백을 준 덕원 오빠가 제 문장을 잔뜩 불려서 글 한 편을 완성해버렸죠.
덕원 님이 한 문장을 한 문단으로 늘릴 수 있다는 건, 류지 님의 평소 생각과 스타일을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덕원: 맞아요. 저희는 서로의 편집자예요. 초안을 수정하게 되더라도 원작자가 무엇을 신경 쓰면서 집필했는지 잘 알고 있었달까요.
류지: 사실, 그때 덕원 오빠한테 엄청 고마웠어요.
서로의 성향과 일 스타일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게 자연스레 결과물에 배어나는 거겠죠.
덕원: 솔직히, 저희 세 사람의 조합이 뉴스레터라는 프로젝트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는 조합은 아닐 거예요. 아쉬운 부분이 왜 없었겠어요. 우리 중에 마케팅 실력을 갖춘 사람이 없다는 점에 대하여…
잔디: 이 김에 우리 외부 인재를 영업하자!
덕원: 아무튼, 마케터는 없어도 저희는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들이긴 해요. 최소한 같이 쓰고 같이 만들어가면서 다른 팀원을 위해 무엇을 맞춰주어야 하는지 서로 파악하고 있다는 게 큰 장점이죠.
두 번째 코너 ‘나는 자연 인~디다!!’는 투어 공연 출연을 앞둔 열 팀과의 인터뷰를 싣는 코너죠.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코너이기도 합니다. 이 코너의 기획 의도는 무엇인가요?
덕원: 긴 분량이라고 하셨지만, 사실 인터뷰를 정리할 때마다 매번 아쉬움이 남았어요. 그게 분량을 엄청 많이 줄인 거예요. 이제 막 시작하는 팀이 지역 씬에서 홀대당한 이야기, 창작자로서 일과 음악을 병행할 때 느끼는 막막함, 전업 음악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불규칙한 수입 같은 이야기들을 깊이 나눴어요. 하지만, 그런 일면만 드러내기보다는 열 팀이 가진 다양한 키워드를 수면 위로 올리는 인터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인터뷰이들에게 팀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알려야 한다고 강조하시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두명인간을 검색했는데 투명인간만 나오네요”, “해서웨이보다 앤 해서웨이가 포털사이트에서 더 상단에 떠 있어요”, 이렇게 즉석으로 검색 결과를 언급하면서 인터뷰를 진행하시더라고요.
덕원: 어떤 뮤지션이 멋진 음악을 만들면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잖아요. 좋은 음악을 하고 있고 앞으로 잘 풀릴 게 분명한 팀들을 보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럴 때 이들에 관한 정보와 에피소드, 온갖 이야기들이 더 많이 온라인에서 알려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돼요.
회사 생활로 비유하자면, 연차가 높은 선배가 이제 막 자기 일을 시작한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겠어요. 완성된 인터뷰를 본 다른 팀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아보신 적이 있나요?
잔디: 인터뷰에 참여한 밴드가 공식 메일 계정으로 <동서남북>을 구독하기도 하고요, 좋았다고 말씀해주신 분들이 많으시죠. 그리고 인터뷰를 비대면으로 진행할 수 있는데도 부러 대구에서, 전주에서, 서울 홍대에 있는 저희 작업실까지 와주신 팀들도 있었어요. 이번 여름이 엄청나게 더웠잖아요. 그렇게 멀리서 오신다는 말을 들으면 감사했죠.
덕원: 그러니까 이 코너는 저희의 기획 의도뿐 아니라, 함께 해준 팀들이 모두 성의 있게 임해주셔서 가능했던 일이에요. 덕분에 저희도 힘을 내서 열 편의 인터뷰를 해냈고요.
마지막 코너 ‘금쪽같은 내 인디’는 잔디 님이 마음 건강에 관해 이야기하는 코너예요. 인디밴드 구성원으로서의 구체적인 사례가 담겨 있다 보니 가장 실용적인 코너처럼 느껴졌어요.
잔디: <동서남북>의 메인 콘텐츠가 인터뷰인 만큼 대화와 소통이 중요하다는 걸 더 자주 느꼈던 시간이었어요. 저는 그 깨달음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고요. 의사소통에 관한 구체적인 기법을 알려드리는 콘텐츠이니 10회 내외의 분량으로 연재하기에도 알맞았습니다.
그간 여러 인터뷰를 통해 알려주셨듯, 잔디 님은 정신건강간호 분야의 일을 해오셨잖아요. 전문적인 정보를 쉽게 풀어내는 기회를 잘 활용하셨는지 궁금해요.
잔디: 네, ‘금쪽같은 내 인디’는 실제로 제가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 기반하고 있어요. 저로서도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을 대중의 언어로 풀어보는 게 새로운 경험이 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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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뮤지션이 관객에게 말을 거는 법”
<동서남북>이 총 12편인데 7화를 기점으로 장르가 변하죠. 전반부가 ‘투어 준비기’였다면, 후반부는 ‘문제 해결 보고서’처럼 다가왔어요. 두 분이 코로나에 확진되면서 일부 지역 공연이 취소됐는데, 이 과정을 뉴스레터를 통해 전해주셨잖아요. SNS보다 뉴스레터에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주셨어요.
덕원: 저희가 종종 느끼는 어려움 중 하나가 SNS에서의 소통방식이에요. SNS는 공식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창구인데 동시에 날 것의 무언가를 올리면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건가?’라는 일종의 검열이 생겨요. 이를테면, 저희가 이미 지나간 공연을 돌아볼 수 있잖아요. 그 과정에서 뭐가 아쉬웠고, 누구에게 미안했고, 그래서 앞으로는 어떤 부분을 개선하고 싶은가에 대해서요. SNS에서는 이걸 편하게 쓰기가 어렵더라고요. 매체 특성일 수도, 분량 문제일 수도, 보는 눈이 많고 적음을 인지하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실제로 뉴스레터에서 조금 더 날 것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나요?
덕원: 우리가 표현하는 모든 메시지가 널리 전달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동서남북>을 통해 모두를 위한 게 아니라, 충분히 솔직하게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을 향해 말을 걸 수 있었죠. 확실히 심정적으로 도움을 받았어요.
공연 및 뉴스레터의 중간 평가, 전체 평가를 총 두 번의 셀프 인터뷰로 담아 주셨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질문자의 시선으로 전하는 기존의 인터뷰와 세 분 사이에서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셀프 인터뷰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덕원: ‘셀프 인터뷰’의 취지는 저희가 무대 위뿐 아니라 밑에서도 재미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웃음) 그리고, 저희끼리 한참 고민을 나누고 나서도 “왜 그때 그랬잖아요”라는 말을 하면서 과거 회상을 하면, 세 사람의 기억이 전부 다른 적이 많아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공동의 기록을 할 필요를 느꼈죠. 셀프 인터뷰를 하면서 당시 우리가 나눈 재밌는 이야기나 고민이 담긴 이야기들을 뉴스레터에 붙잡아 둘 수 있었어요.
잔디: 코로나라는 변수가 공연을 한 번 끊어가게 했지만, 뉴스레터는 휴재 없이 지속됐어요. 그 점이 의미 있게 느껴져요. 중간 평가보다도 마지막 전체 평가가 참 좋더라고요.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요.
푸터에 다음 공연을 예매할 수 있는 예매처 상세페이지 링크를 연동해두셨잖아요. 뉴스레터를 통해 ‘공연 예매율을 몇 % 정도 높여야지’라는 식의 목표를 세우셨던 건가요?
잔디: 편하게 원하는 링크를 넣을 수 있는 기능이 있길래 써보았을 뿐, 거기에 특별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몇 분이 예매처 링크를 클릭했는지 통계를 따로 확인하지도 않았고요.
덕원: “공연에 와 주세요!”라기보다는 저희 음악을 이미 즐기고 있는 분들께 더 재미있는 걸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어요. 사실 다른 팀과 컬래버레이션을 이룬 역사가 길지는 않아요. 저희는 인디 씬에서도 대단히 독립적이었고…
류지: ‘독립적인’ 보다는 ‘폐쇄적인’이, 더 맞지 않겠어요?
덕원: 그렇죠. 폐쇄적인 스타일로 업계에 오래 있었던 거죠. 그러다 작년부터 저희 세 사람의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고 다른 팀들과 교류하게 됐어요. 다른 팀이 가진 히스토리를 살펴보고 정리하는 것, 그리고 이렇게 폐쇄적인 우리와 그들이 만나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쌓아나가는 게 중요했어요. 오늘의 뉴스레터로 공연 관객을 확보하는 식으로 빠른 결과를 유도하는 마케팅 활동은 아니었죠.
한 시즌을 마친 후, 뉴스레터를 통해 더 시도해보고 싶은 게 생기셨나요?
덕원: 음악을 들으면서 본문을 함께 볼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이에요. ‘어떻게 해야 구독자들이 텍스트와 오디오 더 깔끔하게 함께 감상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있거든요. 밴드에서 곡 작업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저희는 과정이 중요한 팀이라, 데모 버전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곡을 발전시켜요. 이 과정을 뉴스레터로 잘 정리한 후 마지막에 초안 상태였던 음악을 들어보실 수 있게 하고 싶어요.
미공개 데모곡을 뉴스레터를 통해 최초 공개하는 방식이네요.
덕원: 네, 싱글 곡이 아닌 앨범을 두고 뉴스레터를 활용할 방법을 그려보고 있어요. 보통 앨범이 적게는 8곡부터 많게는 15곡이니까 곡당 한 회차씩 다뤄볼 수 있겠죠. 이 경우에도 유료 발행이 기본이겠지만, 일부 무료 회차를 넣어서 저희의 음악을 알리는 일도 해야겠고요.
브로콜리너마저는 내년 여름에도 <이른열대야>로 관객들을 만나주시리라 예상해보게 되는데요. 그때도 올여름의 <동서남북>과 비슷한 방식으로 뉴스레터를 병행하실 수 있을까요?
잔디: 일단 공연을 하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요.
덕원: 하지만 멤버들이 순발력이 좋아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순발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계획대로 무언가를 하든 하지 못하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그때그때 함께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눈 대화와 처한 상황에 대해 기록해두는 게 의미를 가져요. 이번에는 그 방법이 <동서남북> 뉴스레터였고요.
음악이 아니더라도 나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분들이 과연 어떤 온도로 뉴스레터를 대하면 좋을까요?
덕원: 저희에게 있어 뉴스레터는 ‘보조적인 도구’예요. 뉴스레터를 통해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브로콜리너마저가 하고 있는 작업을 아카이빙하기 위해 이 도구를 활용하고 있어요. 물론 어떤 도구가 가진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제가 앞서, SNS에서의 소통 방식에서 조금 어려움을 느낀다는 말씀을 드렸잖아요. SNS로 알리고 말하는 게 모두에게 쉬운 일은 아닐 거예요. ‘내가 인스타그램이랑 맞는가?’라고 질문했을 때 ‘아니다’라는 답이 나올 수도 있어요. 그럴 때 뉴스레터가 자신에게 좀 더 잘 어울리는 방식일 수도 있어요.
잔디: 역시 매체 전공답다.
류지: 아까부터 강의 듣고 있는 것 같아요.
덕원: 저희가 음악 활동을 하는 동안 수많은 인터뷰를 했는데, 관련 자료가 엄청나게 많이 소실됐어요. 실물 잡지는 잃어버리기도 하고, 매체의 온라인 사이트가 없어지기도 하고요. 그때부터 잘 모아두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작업을 쌓아두는 거죠. 사실 저희는 아카이빙을 분산해서 하고 있기도 해요. 구독자들의 메일함에도 우리의 활동이 쌓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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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며
“우리 이제 그만 접을까 많이 버텼으니까.” 2020년 겨울의 ‘2020’. 한 해를 돌아보는 가사는 혼잣말도 아닌, 누군가에게 구하는 허락도 아닌 무엇이었습니다.
“생각을 하지 말고 생활을 하자.” 2021년 겨울의 ‘바른생활’. 그 사이 상황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너무 고민하고 걱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여름이 됐습니다. 2005년에 데뷔한 인디 밴드 브로콜리너마저가 쌓아 올린 시간 중, 꼬박 1/6에 해당하는 만큼을 코로나19와 함께 보내게 됐죠. 그들의 연륜은 동료 뮤지션들과 새로운 방식의 온-오프라인 만남을 이루어냈고, 그들의 초심은 음악 너머의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팬들에게 즐거움을 전했습니다.
뉴스레터 <브로콜리너마저의 K-인디 동서남북>을 다 읽고서, 이다음에 쓰일 노랫말은 무엇일지 상상해봅니다. 그 사이, 오래도록 사랑받은 ‘유자차’ 속 한 줄을 되새기며 기다려봐도 좋겠죠.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 [보낸사람:] 브로콜리너마저, <브로콜리너마저의 K-인디 동서남북> 구독하기
사진 | 포토그래퍼 전예슬
인터뷰 | 에디터 서해인, 스티비 마케팅 팀(룰, 세솔)
편집 | 스티비 마케터 룰
메인 이미지 | 스티비 디자이너 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