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스테디클럽 인터뷰, 구독자는 오직 365명
다다익선이 아닌, 리미티드한 구독자 관리 모델을 만든 이유
Interviewee 원덕현
월간 주기로 발행되는 뉴스레터는 많지만 ‘양력이 아닌 음력으로 매달 1일에 발행’하는 건 국내에서 뉴스레터 <MoST>가 유일할 것입니다. 슬로우스테디클럽은 옷을 만들고 파는 곳이지만, 사람들의 ‘의식주’ 전반에 깊이 관여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이기 때문에 24 절기의 영향권에 속해 있어요. 고객들과 함께 한 절기, 한 계절을 살아내다 보니 어느덧 브랜드 창립 10주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브랜드 구성원들의 소소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담겠다는 취지로 2024년에 창간된 뉴스레터 <MoST>. 약 반년 간의 뉴스레터 운영기를 돌아보기 위해 슬로우스테디클럽의 원덕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티비 뉴스레터> 구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슬로우스테디클럽의 원덕현입니다. CEO,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래픽 디자이너, 기획자를 겸하고 있어요. 여러 가지 역할들을 도맡고 있는 조금은 이상한 사람입니다.
많은 역할들 중에서 지금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정체성은 어떤 것일까요?
CEO 빼고는 다 재밌습니다. 그래픽 디자인을 할 때는 실무진들과 같이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좋고요. 디렉터는 제 머릿속에 있는 방향성을 결과물로 보여줄 수 있는 직종이라서 흥미를 느껴요. 제가 대표를 하고 있는 이유는, 이렇게 재미있는 일들을 하기 위해 때로는 재미없는 일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희는 살롱 안국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동안 슬로우스테디클럽이 운영해 오셨던 공간들을 소개해주세요.
처음에는 삼청동에 있는 가옥을 리노베이션 해서 1층 매장, 2층 카페를 함께 오픈했고, 두 번째로는 서울숲 지점을 열었어요. 두 공간의 콘셉트가 매우 다른데요. 서울숲 지점은 미래상을 드러낸 SF 영화들, 그중에서도 특히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본의 제약을 받고 있지만 그 안에서 만들고 싶은 걸 최대한 표현하자는 태도를 공간 디자인에 녹이고 싶었어요.
당시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저희에게 쉽게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는 문제여서 인테리어 공법에도 그런 대응책을 담았고요. 말하자면, 철거가 용이하고 다른 공간에서 재활용이 가능하게 만들어진 곳입니다. 세 번째로는 영등포에 있는 백화점 내 공간으로, 90평 이상으로 부지가 넓지만 폭이 좁은 환경을 이용해 ‘터미널’ 콘셉트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영등포 지점에서 초기 설계 단계부터 염원했던 런웨이 행사를 진행했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의 특징을 잘 활용했구나’라고 자평하고 있어요.
네 번째 지점인 살롱 안국점은 익선동에 있어요. 이곳 역시, 머지않은 과거에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안고 있었던 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 동네에 새로운 매장을 꾸리게 되셨나요?
그런 걸 고민하기 싫어서 오피스 빌딩에 입점을 했어요. 이곳은 첫 지점인 삼청점에서 알게 됐던 것들을 적극적으로 적용한 공간인데요. 삼청점 카페가 위치한 2층에 3평 남짓한 정도의 제 사무실이 있었어요. 같은 건물에 매장과 사무실이 있으니 고객을 직접 만나고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그런데 당시에 매장이 확장되면서 제 사무실을 빼게 됐는데요. 사무 공간을 근처로 옮기고 매장에서 몸이 멀어지니 그때부터 회의감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래서 좀 더 현실적인 버전을 고민하게 됐어요.
현재의 살롱 안국점은 1층에 매장이 있고, 11층에 사무실이 있어요. 같은 건물에 있어서 오며 가며 손님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거죠. 이곳은 거리를 걸어 다니다가 쇼윈도를 보며 들어오게 되는 식의 접근성은 부족한 곳이거든요. 간판이 잘 보이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일부러 찾아오신 손님들과 좀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고, 커뮤니케이션하고 싶다는 의미를 새 지점 이름인 ‘살롱’에 담았습니다.
진짜 우리를 궁금해할 것 같은
365명을 위한 뉴스레터
고객을 대면으로 만나기도 하지만, 뉴스레터로도 만나기 시작하셨죠. 살롱처럼 또 재미있는 작명이 있어요. 뉴스레터 <MoST>(Mass of SlowSteadyClub Thought)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지어진 이름인가요?
언젠가 저희가 매거진을 만든다면, 매거진 이름으로 MoMA(뉴욕현대미술관)를 패러디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이름이에요. 모티프를 둔 단어처럼 철자 중 ‘M’으로 시작하고 싶었고, 가운데 ‘o’만 소문자라는 특징을 살리면서, 동시에 슬로우스테디클럽 브랜드명의 첫 글자인 ‘S’를 넣은 단어들을 떠올렸어요. 그래서 먼저 ‘MoS’가 마련된 상태였고요. 이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의 덩어리(Mass) 같은 생각들(Thought)을 조합해 보니 ‘MoST’라는 이름이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입니다.
본래 <MoST>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브랜드 관련 소식과 자체 제작 콘텐츠들의 일정을 체크할 수 있는 종합소식지 역할을 했어요. 그런데 2024년부터 같은 이름을 유지한 채로 내용을 개편하면서 뉴스레터를 시작하셨죠. 왜 뉴스레터라는 도구를 선택하셨나요?
‘도파민 중독의 시대’에 도파민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도파민 제로를 다른 말로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안 물어봤고 그러니까 안 궁금한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들이죠. 하지만 그런 걸 원하는 구독자 분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봤어요. 정말 우리를 궁금해하는 사람들, 질문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이야기를 들려주려면 누구나 구독할 수 없는 채널을 찾아야 했어요. 오히려 타겟층을 좁히는 방향이 되더라도 크게 두렵지는 않았죠.
구독자를 365명으로 한정하면서, 10일 내 미열람자를 구독자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과감한 구독자 관리 모델을 가지고 있으신데요. 어떤 고민을 통해 이런 모델을 만들게 되셨나요?
저희는 입는 것뿐 아니라, 먹는 것, 보는 것, 듣는 것이 모두 한 사람의 취향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아요. 그렇게 저희 브랜드를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 취향을 표현할 수 있는 분들로 100명 정원의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열었는데요. 대화가 매일 같이 오가는 공간은 아니지만, 그 채널을 느슨하게 운영하면서 정원이 한정되어 있을 때의 ‘리미티드 한 소속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덕분에 최소한 뉴스레터 구독자를 100명은 확보할 수 있다 싶었죠. ‘이제 265명만 더 모으면 된다!’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시작한 거예요. 그렇게 모여있는 분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싶다는 야심이 있었어요. 저희는 구독자 분들이 신규 뉴스레터를 일정 시간 열어보지 않는 걸 이전 뉴스레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기로 했고요. 그래서 이런 모델이 마련되었습니다.
뉴스레터 하단의 피드백 란을 보면 “<MoST>를 발행하는 건 저희지만, 만들어가는 건 ‘우리’입니다. 구독자분들의 의견을 통해 더 넓고 깊은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겠습니다”라고 되어 있어요. 실제로 구독자들의 기여도, 혹은 함께하고 있음의 감각을 경험하고 있으신가요?
저희는 고객 대상 만족도 설문조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연 1-2회 정도 실행하면 600-700분 정도는 참여해 주시거든요. 브랜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표준 지표 삼을 수 있는 숫자인데, 뉴스레터 구독자 365분은 그보다 더 크고 깊은 의지를 가지고 있는 고객층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구독자 피드백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이라서, 오히려 우리가 보내는 뉴스레터에서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원인 분석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됐어요.
콘텐츠적 접근을 하는 팀으로서
잠시 멈춰 서기 그리고 계속하기
뉴스레터 출범 전에 유튜브나 홈페이지를 통해 ‘고독한 단벌신사’, ‘웨드토크’ 등 오리지널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오셨으니 반응을 수집해서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게 가능하실 거란 생각이 듭니다. 원인 분석을 하는 시간에는 내부에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으시나요?
전사적으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열심히 만들던 시기를 지나쳐왔고, 현재는 일시 정지를 해도 좋은 때라는 데에 의견이 모였어요. ‘우리가 콘텐츠 제작에 쏟는 노력 대비 어떤 피드백이 다가오는가’라고 했을 때 저와 팀원들이 물음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현실적으로 우리가 지속 가능하게 슬로우스테디클럽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해요.
부득이하게 멈춰야 하는 업무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야 하는 업무들이 남을 텐데요. 그 기준선이 분명할까요? 예를 들어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래전부터 꾸준히 운영하고 있는 건 인스타그램의 ‘도큐(DOCU)’ 시리즈인데요. 본문의 텍스트는 제가 일기를 쓰듯 쓰고 있지만, 이 시리즈를 통해 저희가 셀렉하는 제품의 코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필요성이 확실하고요. 또 살다 보면, 2년 전 오늘의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잖아요. 저는 도큐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그날의 감정을 왜곡 없이 쓰자고 다짐했거든요. 2년 전의 기분을 제 힘으로 정확히 떠올리기는 어렵지만, 지난 도큐를 보면 그때의 감정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어서 좋아요. 그런 글들을 쓰면 쌓아가는 의미도 있고 작업 부담도 덜해서 아주 좋습니다. 계속해야 하는 대표적인 일 중 하나죠.
<MoST> 첫 호에서는 덕현님이 2024년의 목표로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브랜드 및 숍 만들기!”를 꼽아주셨어요. “‘원팀(one team)’이 되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 믿습니다”라는 말도 덧붙여주셨고요. 2024년 연말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 중간평가를 해볼 수 있을까요?
저는 혼자 3년 정도 사업을 하고, 사업 4년 차부터 다른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올해 저와 곁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원팀에 가까운 모습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긍정할 만한 상황이죠. 브랜드 및 숍으로서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 집중했던 한 해이기도 해요. 제품의 세일 이벤트나 프로모션을 공격적으로 하기보다는, 콘텐츠적 접근을 했죠. 단편 영화를 만들기도 하고, 영등포 지점에서만 할 수 있는 런웨이 행사를 열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것들이 과연 브랜드의 영향력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렇지 못했다’라는 답이 나와요. 최근에는 더 많은 신규 고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 즉, 확장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곧 10주년을 맞이하는 슬로우스테디클럽에는 어떤 이벤트가 예정되어 있나요?
올해는 11월에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에디션(Unlimited Edition)’의 공식 후원사로 참여하게 됐어요. 저희는 언리미티드에디션 스태프 분들을 위한 유니폼을 만들 예정이고요. 브랜드의 지난 10년의 기록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그간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발행해 온 도큐 시리즈를 책과 잡지 사이의 형태로 엮어 보려 합니다. 그럼, 언리미티드에디션에서 만나요!
사진 | 포토그래퍼 전예슬
인터뷰 | 에디터 서해인
편집 | 스티비 한세솔
메인 이미지 | 스티비 이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