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IC 인터뷰, 건축 회사 출신 직장 동기들의 작당모의
우리가 원하는 매체는 우리가 만듭니다
Interviewee 정보근, 이하경
성수동의 수많은 팝업 스토어. 신촌의 압도적인 공실률… 오늘도 많은 공간들이 생겨나고 또 사라집니다. 우리는 모든 걸 시간을 내어 직접 경험할 수 없죠. 하지만 언제나 궁금합니다. 이 공간을 만든 기획자는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사람들의 오프라인 공간 방문 경험은 만족스러운지도요. 여기 ‘공간 관련 필드 구성원 중 30% 이상이 사용하고 70% 이상이 알고 있는 플랫폼’이라는 원대한 목표로 뉴스레터를 시작한 두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막 200호를 보낸 공간 트렌드 뉴스레터 <SOSIC>을 보내는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직장 동기에서 뉴스레터 듀오로
두 분 소개 부탁드려요.
하경: 이전 직장 건축 회사의 공채 동기로 만났어요. 둘 다 건축 설계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보근 님은 부동산 개발과 운영에 대한 관점으로 공간 기획을 했고, 저는 건축과 인테리어, 전시의 경계를 오가며 실무에 집중했습니다.
보근: 동기가 총 23명이었는데, 같은 프로젝트를 한 게 아닌데도 하경 님과는 자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희가 일하는 분야에 대한 공통적인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떤 갈증이었나요?
보근: 그전까지 건축은 가장 느리게 변하고 호흡이 긴 산업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는데, 점점 건축, 인테리어, 부동산 콘텐츠, 사회문화적 트렌드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게 눈에 보였죠.
학교 다닐 때부터 건축이나 인테리어 월간지를 정기 구독했었는데, 이렇게 시류가 빨리 변하는데도 복합적인 관점을 전달하는 공간 매체가 없더라고요. 그때가 2021년이었는데 이런 매체를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만들어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았고, 그게 <SOSIC>의 시작이었어요.
이전에, 보근 님은 ‘친구와 함께 회사에서 쌓을 수 없는 포트폴리오를 스스로 만들자고 의기투합 했어요’ 라고 표현하신 적도 있었죠. 서로를 어떤 동료로 바라보셨나요?
하경: 보근 님은 배경을 잘 파악하고 싶어 했어요. 어떤 현상이 벌어진 이유를 남들에게 충분히 잘 설명하면서도 다음 스텝은 무엇이고 어떤 변화가 뒤따를 것인지 예측하는 걸 즐기더라고요. 저는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들에 대해 관심이 많은 데 반해, 보근 님은 눈에 보이는 너머의 흐름을 볼 줄 아는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보근: 하경 님은 저와 가진 재주가 다르고 그만큼 뛰어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인테리어, 가구, 예술을 디깅하면서도 또 남들보다 한 발짝 앞서 있더라고요. 만일 함께 폭넓은 '공간'이란 주제로 작업을 한다면, 제가 큰 흐름을 제시하고 하경 님이 꼼꼼하고 자세하게 채워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어요.

이제 막 <SOSIC>의 200호를 보내셨잖아요. 1호를 보내셨을 땐 두 분 다 건축 회사 저연차 사원이라 새로운 자기만의 일을 도모하기에는 너무 바쁘셨을 것 같거든요. 지속성을 위한 동력은 무엇일까요?
보근: 한 사람이 다른 일로 너무 바쁠 때면, 다른 사람이 좀 더 서포트해주기도 해서 갑작스러운 휴재는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구독자들뿐만 아니라 협업하는 파트너, 클라이언트들께도 신뢰감을 드리고 싶었거든요.
하경: 그리고 발행 전에 뉴스레터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확실하게 짚고 출발한 것도 도움이 됐어요. 세상의 뉴스와 공간을 연결하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트렌드와 인사이트를 전하자는 고유의 브랜딩을 했죠. 타깃 고객, 페르소나를 설정해서 톤 앤 매너를 잡고, 그래픽과 아티클 형식까지 정말 세세하게 설정했거든요.
초반 단계부터 체계적으로 시작됐네요.
보근: 처음에는 스티비의 크리에이터 트랙도 많이 의지가 됐어요. 다른 발행인 분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분야는 다르지만 비슷한 고민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요. 스티비에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크리에이터 트랙이 있으니, 오래된 사람들을 위해서도 운영해 주시면 어떨까 제안하고 싶어요.
고인물을 위한 크리에이터 트랙도 필요하시다는 거죠? (웃음)
보근: 맞아요. 고인물!
'시간이 나면 이번 주말에 가 보세요' 라는
접근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새로 생겨나는 공간이 많고 리뉴얼한 공간 또한 많으니, 공간 뉴스레터를 운영하시는 입장에서는 소재가 고갈된다는 느낌은 받지 않으실 것 같은데요. 실제로는 어떠신가요?
보근: 지금은 한 호에 1개의 아티클을 작성하지만, 3년 넘게 주당 3개의 아티클을 작성해왔는데요. 그땐 뉴스레터에 담을 최종 후보 3개를 고르기 위해 각자 10개씩 아이템을 가져왔어요. 그럼 20개잖아요. 그걸 늘어뜨려 놓고 매주 최종 점수를 매겼죠.
소재가 많아서 치열했겠네요.
보근: 그때도 지금도 결국 우리가 다룰 공간이 뭘까를 가려내는 데 시간을 많이 쓰고 있어요. 물리적인 결과물로서 공간을 소개하기보다는, 그 공간이 등장한 배경을 보려고 해요. 사회 문화적 흐름, 경제와 소비 트렌드, 기술과 산업의 변화까지 두루 고려해서 소개할 만한 의미가 있는 공간을 우선적으로 발굴합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다루신 러너 지원 공간은 어떠셨어요? 그 공간을 보니 정말 달리기가 대중의 취미가 되었다는 걸 체감하게 되더라고요.
하경: 사실 공공기관에서 제작한 공간이라 단출하게 기구들이 비치되고 락커가 있는 정도가 아니겠느냐고 막연하게 여겼었는데요. 직접 가서 살펴보니 관리가 잘 되어 있고 러너들에게 정말 필요한 물건들을 판매해서 인상 깊었어요.
또 광화문역, 여의도역, 회현역처럼 업무 밀집 지역에 조성된 것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서 옷을 갈아입고 바로 출근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었으니까요. 유휴 공간을 이렇게 활용할 수 있구나 싶어서 재미있게 다녀왔어요.
보근: 지하철역이라는 게 시민들의 삶과 매우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곳이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했어요. ‘서울시가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러너 지원 공간을 도입한 장소가 왜 지하철역이었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답사를 갔는데요. 출퇴근하며 매일 오가는 장소에 의외성을 가진 공간이 생기면 시너지가 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이게 다 현장 답사, 취재 기반의 콘텐츠라는 거잖아요. 언제 다 가시는 거예요? (웃음)
보근: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돌아다녀요. 제 동선에 포함된 곳에 가기도 하지만 보통은 궁금한 곳이 있으면 바로 가보곤 합니다.
하경: 사진도 중요한 부분인데요. 직접 촬영해서 구도랑 피사체가 <SOSIC>만의 시각으로 잘 보이게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둬요. 그래서 저희가 직접 가서 보고, 몸으로 느껴보는 게 중요하고, 더 나아가 이를 구독자들한테 잘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을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요즘은 한 거점을 중심으로 동선을 설계해 주는 큐레이션 콘텐츠가 많은데요. 공간을 소개할 때, 함께 가보면 좋을 다른 곳들을 소개하지 않는 건 의도하신 걸까요?
보근: <SOSIC>은 공간 뉴스레터지만 “시간이 나면 이번 주말에 가 보세요”라는 메시지를 던지지는 않아요. 다만, 많은 분들이 공간에 방문할 때 그 공간이 속해 있는 지역을 중요하게 생각하실 수 있기에 그런 관점에서 로컬을 다루는 아티클도 꽤 썼었어요.
이를테면, 성수동은 좋게 말하면 ‘팝업스토어의 최전선’이지만 오로지 그렇게만 이미지 소비가 되기도 하잖아요. 이렇게 특정 지역이 핫플레이스로 부상했을 때 공공 영역이 해야 하는 역할을 타운 매니지먼트 사업으로 풀어내는 사례가 있어요. 혹은 해외 관광객 숫자의 증가세 속에서 CJ올리브영이 어떤 식으로 전략을 세우고 매장 출점과 공간 구성을 하는지 살펴보는 거죠.
그럼 <SOSIC>이 다른 기업이나 브랜드와 협업을 해서 공간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만들 때 내세울 만한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보근: 단순히 새로운 공간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 경제 전반의 흐름을 포착하고 그것을 기업의 전략과 연결 지어 소개하려 해요. 공간을 만드는 일이 기업에게 왜 중요한지, 얼마나 깊은 고민을 한 결과인지 녹여내고 있어서 협업 파트너나 클라이언트분들도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저희만의 스토리텔링을 기대하시고 맡겨 주시면 기쁘고 유대감도 생기죠.
구체적으로 파트너사의 반응이 좋았던 브랜디드 콘텐츠가 있었나요?
보근: ‘무신사 스탠다드 한남 플래그십 스토어’를 소개한 사례인데요. ‘왜 한남동이라는 고급 하이 스트리트에 SPA 브랜드가 등장했을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한남동이라는 지역의 맥락을 강조해 설명했어요.
이 과정에서 일본의 고급 상권인 긴자 거리도 초반에는 럭셔리 브랜드들이 많았지만, 이후 SPA 브랜드가 들어오면서 오히려 SPA 브랜드 이미지가 격상된 사례를 다루었고요. 한남동이라는 로컬과 그 로컬에 들어온 무신사 스탠다드의 관계성을 다루는 콘텐츠는 저희도, 파트너사도 만족도가 높았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역량의 뿌리는
뉴스레터예요.
점점 사람들이 직접 가보지 않고도 간접 체험으로 만족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공간 관련 콘텐츠 제작자의 입장에서 이런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보근: 오프라인 프로그램 ‘공간을 듣다, <룸투어 ROOM TOUR>’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월 1회씩 6개월 동안 공간 기획자분을 모시고 30여 명의 참여자 대상의 공간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건데요. 저희가 소개하는 오프라인 공간에 와야 하는 이유를 좀 더 만들어드리고 싶었어요. 감도도 높고, 의미 있다고 판단한 공간을 직접 선별한 것이어서 참여자분들을 만족시킬 자신도 있었고요.
하경: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만남을 뉴스레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텍스트가 아닌 영상, 사진 등 다른 포맷의 결과물로도 만들었는데요. 저희는 아카이빙을 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그런 시도 덕분에 대기업 건설사의 하이엔드 주거 브랜드 공간과 철학을 담아내는 아티클, 필름, 포토까지 총괄해서 기획, 제작을 맡는 기회로도 이어졌고요.
보근: 덕분에 저희 둘 다 콘텐츠 제작 역량이 많이 늘어났어요. 그럼에도 모든 것이 시작된 뿌리는 뉴스레터라고 생각하면서, 저희만의 콘텐츠를 기획하는 방식,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계속 잘 이어 나가려고 해요. 나아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저희를 찾아주시는 분들과의 다양한 작업 또한 계속 임할 생각입니다.
끝으로, 뉴스레터에서 확장될 수 있는 여러 프로젝트들 중 앞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지점이 있을까요?
보근: 지금까지 써온 아티클 200여 편을 단순히 모으는 게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단행본을 출간하고 싶어요. 저희가 구축해 온 시각이나 방향으로 오프라인 공간을 바라보며 더 깊은 얘기를 풀 수 있을 것 같아요.
하경: 그다음으로는 스몰 브랜드의 공간 기획, 인테리어까지 한 번에 제안 드리는 컨설팅도 구상하고 있어요. 지금으로서는 저희가 가진 역량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보근: 기업의 서비스나 브랜드 제품의 개념이나 철학에서 뻗어나간 공간 속에서 고객을 향한 메시지가 분명해지고 힘이 생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이 팔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가진 가치를 공간으로 재해석해, 결이 맞는 공간 기획부터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제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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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포토그래퍼 전예슬
인터뷰| 에디터 서해인
편집 | 스티비 한세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