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얘기, 돈 얘기 혹은 뉴스레터 제작기

돈 벌 생각은 없습니다. 아니, 있어요.

음악 얘기, 돈 얘기 혹은 뉴스레터 제작기

돈 벌 생각은 없습니다. 아니, 있어요.

음악가는 돈을 쓰면서 음악하는 이와 돈을 벌면서 음악하는 이로 나뉜다. 누구나 전자로 시작하지만, 후자로 전환하는 일 즉 음악 일에서 순수익을 내는 일은 메이저와 인디를 막론하고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공연수익’과 ‘행사비’ (기획 및 진행에 음악가가 참여하면 ‘공연’, 외부 기획에 섭외가 되면 ‘행사’라고들 부른다), 음반 및 음원 수익, 영화/드라마 음악 등의 작업 수입 등이 ‘플러스’ 항목이고(레슨이나 엔지니어로서의 외부 작업에서 오는 수입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건 또 다른 직업이지, 음악‘하며’ 돈을 버는 건 아니다), 공연 진행비, 음반 및 음원 제작비, 장비 구매 및 수리 등의 비용이 ‘마이너스’의 대표적인 항목이다.

‘인디 음악가’인 나는 내 음악적 취향과 지향이 큰돈과는 무관한 종류의 것임을 알고, 굳이 큰돈을 벌 생각을 해본 적 없이 십수 년 음악 일을 (다른 직업과 병행하며) 해왔다. 친구나 친척 어른들이나 주변인들은, 음악가라면 응당 다 유명해지고 싶고 방송에 막 나가고 싶고 큰돈을 벌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내가 성공 못한 음악가라고) 생각하는 듯한데, 나는 애초부터 그러고 싶었던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안 유명해지고 싶고 방송에 안 나가고 싶고 돈을 안 벌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작품이 안 묻혔으면 싶고, 새 작품을 발표할 때 새로운 이들도 들어줬으면 싶다. 그리고, 돈도 적당히 벌고 싶다. 다만 돈 때문에 ‘대중’이라든가 ‘리스너’와 같은 이들을 위해 음악적 취향과 지향을 바꿔야 하는 강박을 전혀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전업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돈을 벌기 위해 음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데 드는 돈, 더하기 월세와 생활비가 나오면 좋겠다, 정도로 풀어보겠다.

음악해서 돈 벌기? 번 돈으로 음악하기?

앨범 아니 싱글 한 곡 녹음해서 발표하는 데 드는 비용은 절대적으로 꽤 된다. 악기나 장비에 들어가는 비용도 크지만, 한 곡의 녹음, 믹싱, 마스터링, 심의, 아트워크, 홍보 과정만 셈해도 꽤 큰 비용이 든다. 몇만 원, 몇 십만 원 단위가 아니다. 유튜브 이후로 더더욱 강제된 측면이 있는 뮤직비디오라도 하나 하게 된다면 비용은 훌쩍훌쩍 뛴다.

메이저의 경우처럼 활동기나 휴식기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디 음악가들도 많은 경우 음원이나 음반 발표를 계기로 기획 공연을 만든다든가 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또 그를 통해 ‘활발히 활동하는 음악가’로서 행사 섭외자들의 ‘메뉴판’에 계속 올라있을 수 있다. 그래서 꾸준히 음원을 만들어 유통하고 홍보하여야 한다. 그런데, 돈이 든다. 많이 든다. 회사와 함께 하지 않는 인디 음악가에게 월급의 일부를 떼어 제작비에 쓴다는 것은, 그게 단 일 원일지라도 손이 떨리는 일이다. 운이 좋은 음악가여서, 일단 내고 나면 행사로든 공연으로든 음원으로든 저작권으로든 환수를 할 수 있고 환수한 뒤로는 플러스알파를 벌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버는 건 미래의 일이고, 일단은 먼저 돈을 써야 하는 것이다. 이전에 얻은 수익을 모아서 다음 작업에 쓴다, 는 이론적으로는 맞는 얘기지만 실제 내 통장에 ‘모여’ 있을 리가 없다. 다 녹았는지 없어져 있다.

그러니까 ‘음악해서 돈 벌기’는 다행히 가능한데, ‘음악하기’와 ‘돈 벌기’의 순서를 뒤집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음악해서 돈 벌기’보다는 ‘돈 벌어서 음악하기’의 상황이, 음악을 더 ‘막’, ‘제멋대로’ 하기에 좋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인디 뮤지션들이 해 왔던 ‘돈 벌어서 음악하기’의 고전적인 전략 중에는 CD 선판매가 대표적인 듯하다. 현재와 같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들 이전에도 개인적으로 선주문을 받아 돈을 모아 제작비로 쓰는 경우들이 있었다. 나 역시도 다음 앨범 제작을 위한 선판매 계획을 세워보고 있다. 하지만 크라우드 펀딩이 세련화(?)된 이후 CD는 기본이고 온갖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 고품질의 기념품과 이벤트, 심지어는 아주 개인화된 (1:1 만남과 같은) 상품들이 매대에 함께 올라와있는 상황을 보면, ‘그냥 음악만 (멋대로) 하고 싶을 뿐인데’ 모드의 나는 솔직히 부담스럽다. 그만큼 잘, 화려하게 꾸릴 자신이 많지 않고, 그리 막 내키지도 않는 게 사실이다.

몇 년 만의 CD 앨범 제작을 앞두고 내가 먼저 선택한 ‘번 돈으로 음악하기’의 전략은 그래서, 유료 뉴스레터였다.

<여름곁>: 생각의 여름 (통장) 곁에 있어주세요.

스스로 발행한 것은 아니지만 유료 뉴스레터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스타트업 ‘북크루’에서 진행하는 에세이 배송 서비스 <책장 위 고양이> 시즌 2에 다른 네 명의 필자와 함께, 일주일에 한 편의 글로 참여했었다. 물론 원고료를 받는 일도 좋았지만,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읽어줄 준비가 된 유료 독자들과(만) 글을 공유한다는 감정이 주가 거듭될수록 더해지며 글쓰기가 차차 편해진 것도 좋았고, 그렇게 적어낸 글들이 묶여 고전적 매체인 책(『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해야지』)로 엮이는 과정을 보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연재를 마친 후, 생각했다. 다행히(라는 단어를 자주 쓰게 된다) 늘 내 음악을 들어주는 분들이 세상 여기저기에 계시니,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글 그리고 데모 음원 등으로 공유하면서, 그분들과 함께 음반을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쌓아가는 건 어떨까? 그리고 나는 앞서 말했던 ‘번 돈으로 음악하기’를 부분적으로나마 구현할 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음원과 음반을 제작하고, 구독자는 생각의 여름을 곁에서 제작하는 셈인 것이다.

‘북크루’의 서비스를 담당하였기에 간접적으로 함께 하였던, 스티비 측에 접촉을 시도하였다. 긴가민가한 상태에서 스티비 측에 의사를 전달했더니 생각보다 훨씬 즐거워하셨다. 마침 스티비에서는 유료 뉴스레터 발행 및 결제 시스템을 준비하는 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거다, 싶었다. 처음을 함께한다는 것은 늘 설레는 일이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중, 스티비 관계자가 ‘Patreon’이라는 해외의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티스트가 콘텐츠를 제공하고, 팬들이 정기결제의 형태로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후원의 느낌을 가져가는 체계인 듯하였다. 유튜브에서 ‘패트리온 포 뮤지션즈’와 같은 키워드를 쳤더니 역시나, 패트리온에서 음악가가 성공하기 위한 팁 다섯 가지, 이런 영상이 보였다. 네 가지 이상의 콘텐츠 종류를 제공하라, 돈은 최저금액인 10달러부터 시작하라,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다른 것들은 기억나지 않고, 네 가지의 콘텐츠를 만들자, 라는 실무적인 출발점을 설정하였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네 가지 메뉴가 다음과 같다.

1) 음원 제작 노트: 발매 예정인 음원의 제작노트를 발매 시기 전후로 적어 공개하고자 했다. 구독비로 만들어주신 음원이니, SNS보다 먼저 가사를 공개한다든가 하는 특전(?)도 섞었다. 최근에는 발매 예정 음원의 가사를 공개한 뒤 구독자 대상 개사 백일장을 열기도 했다.

2) 플레이리스트: 내 음악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재미가 없고, 또 내 음악 취향 자체도 공유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졌다. 매주 두 개의 주제(예를 들면 여름과 겨울, 물과 불)에 맞추어 노래들을 엮어 유튜브 공식 음원 링크로 제공하였다.

3) 미발표곡 혹은 미공개곡 혹은 발표곡 데모 음원: 기존 앨범 혹은 다음 앨범 수록곡의 홈 데모라든가, 미발매 혹은 아예 아무에게도 공개한 적 없는 미발표곡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재료처럼 웹 드라이브에 쌓여 있었다. 정기결제자들에게만 보이는 것이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슬며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는 좋아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공개한 적 없는 음원도 섞였다. 최근에 발매된 음원의 초기 데모를 공개하기도 했다.

4) 독립음악 씬 내부의 협업자 인터뷰: 씬 안에서 이렇게 저렇게 엮였던 관계자 동료들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발췌하여 실었다. 그렇게 다른 음악가, 다른 예술가, 다른 엔지니어들을 소개하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네 가지로 뉴스레터의 꼭지를 구성하였다. 원래는 주 1회 발행하여 이 네 가지를 한데 뭉쳐 보내려 하였다. 그러나 스티비 측에 보여주니, 꼭지의 수나 길이를 보았을 때 2~3회로 나누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 하여 주 2회 발행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네 꼭지에 더하여, 한 달에 한 번 결제자 대상 스트리밍을 포함하였다. 아무래도 음악가이기에, 글과 음원으로만이 아니라 실제 연행도 함께 제공해야 더 하나의 패키지로서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다른 유료 뉴스레터들을 둘러보니 글이라는 노동의 단가가 너무 싸게 책정된 느낌이 들었다. 음악가가 주종목인 음악을 보여주고/들려주고, 대신 단가를 올리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오프라인 공연 가격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몇만 원”이다. 온라인 공연을 “만원” 정도라고 생각하고, 앞선 네 꼭지가 포함된 편지들을 주당 “삼천 원” 정도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싶었다. 왜 삼천 원이냐 하면, 가판대에서 사는 주간지가 삼천 원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올랐을까?) 그래서 만원 더하기 만 이천 원, 해서 이만 이천 원이라는 (스티비 관계자에 의하면) 파격적(으로 비싼)인 가격을 책정하였다.

뉴스레터 <여름곁> 5–2호 미리보기

번 돈으로 음원 무사히 냈습니다!

2021년 5월에서 7월, 석 달 (총 24회 발행) 동안 뉴스레터를 발행하기로 한 것은, 해당 기간 중 음원 발표가 하나씩 예정되어 있었고 이 음원들에 대한 정보들을 공유하면서 뉴스레터를 채워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껏 발행된 분량 중 많은 꼭지들이 발매 음원의 준비 과정에 대한 이야기나 협업자들과의 대화로 꾸려졌다. 얼마 벌었는지는 쑥스러워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하나당 백만 원 이상을 들인 두 개의 음원을 내고, 기념 공연을 준비하는 제작비까지는 미리 충당을 할 수 있었다고만 말해둔다.

2021.6.19 정오에 발매되었습니다

방금 위에서, 발매 준비 중인 곡들에 대한 이야기로 많은 것들을 채웠다고 이야기했다. 뒤집어 말하면, 발매될 것이 눈앞에 없는 경우에는 꼭지들을 채울 것들이 좀 더 막막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뉴스레터를 위해 곡을 매일같이 써서 발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이는 정해놓은 세 달여의 시즌 이후에 어떻게 뉴스레터를 활용하여 수익을 지속적으로 창출할지에 대한 장기적인 고민과 연결된다. 첫 스트리밍 중 한 구독자가, ‘시즌이 끝난 뒤 일주일에 한 번, 이 주일에 한 번도 좋으니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감사하고, 또 스스로도 계속 뉴스레터라는 청자/독자와의 끈을 놓지 않고 싶기는 하지만, 글이 주업이 아닌 음악가인 나로서는 아무래도 끝이 없는 글쓰기로서의 유료 뉴스레터가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음원이나 음반이 유통 두세 달 전에 일정까지 모두 결정된 뒤, 그에 맞춰 기한이 있는 뉴스레터를 해나가는 현재의 방식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껴진다.

아이돌 아티스트들이 주로 하는 네이버 브이 라이브의 아티스트 생태계/카탈로그 속 ‘팬십’ 결제 같은 개념(아마 패트리온이 그러한 듯한데)이 있다면 그 속에 폭 들어가서 뉴스레터를 주간/격주간으로 해나갈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나는 뉴스레터로 번 돈을 사용하여 음원 둘을 무사히 제작, 유통사에 넘겼고 생활비에도 보태었으니, 쉽게 끊지는 못할 것이다. 처음에 음악에 대해 언급하였듯, 돈 때문에 ‘구독자’에 맞춰 취향과 지향을 바꿔야 하는 강박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뉴스레터라는 즉각적인 그러면서도 음악 자체와 무관하지 않은 행위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을 어떻게든 시험해보고 싶다. 구독자, 즉 생각의 여름 새 노래들의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님들에 고마움을 쑥스러이 표하면서 글을 황급히 맺는다.


글. 생각의 여름(박종현,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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